AD

오피니언

CEO를 원했는데 장사꾼이 왔다

미디어바로 2026. 5. 8. 20:05
AD

CEO를 원했는데 장사꾼이 왔다 - 미디어 바로

 

국가를 거래 대상으로 본 정치의 위험한 공통점, 이명박과 트럼프

AI 생성 이미지

 

최근 트럼프 2기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은 이명박이었다.

이 연결은 단순한 인물 비교가 아니다. 두 사람 모두 “기업가 출신 CEO형 리더”라는 이미지로 권력을 얻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정치 경험이 아니라 경제 감각, 이념이 아니라 실용, 토론이 아니라 성과를 기대하는 시대 분위기가 두 사람을 떠받쳤다.

 

이명박과 도널드 트럼프는 시대와 국가가 다르지만 닮아 있다. 둘 다 정치인이 아니라 ‘경제를 아는 CEO’ 이미지로 권력을 얻었다. 사람들은 무능한 정치인 대신 현실 감각 있는 기업가가 나라를 운영하면 달라질 것이라 기대했다. 정치보다 성과, 이념보다 실용, 토론보다 실행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드러난 것은 기업가 정신이 아니라 장사꾼 감각이었다.

 

두 사람 모두 국가를 공동체보다 거래 대상으로 바라봤다. 정책은 철학보다 수익 계산에 가까웠고, 공공성보다 당장의 성과가 우선이었다. 국정 운영은 사회 전체를 조율하는 과정이 아니라 숫자와 이벤트를 만드는 프로젝트처럼 흘러갔다. 겉으로는 실용주의였지만 실제로는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상인 정치에 가까웠다.

 

이명박 정부는 개발과 성장의 언어로 포장됐지만 결과적으로는 토건 중심 사고와 기업형 효율주의를 국가 전반에 밀어 넣었다. 속도는 빨랐지만 방향은 거칠었다. 밀어붙이는 리더십은 있었지만 사회적 설득과 공공적 책임은 빈약했다. 결국 “경제를 살릴 CEO”라는 기대는 시간이 지나며 “국가를 기업처럼 다루는 장사꾼”이라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트럼프는 더 노골적이다. 그는 애초부터 정치보다 거래를 믿는 인물이었다. 외교도 협상이었고 동맹도 흥정의 대상이었다. 국제 질서나 민주주의 가치보다 “미국이 얼마를 손해 보느냐”가 우선이었다. 문제는 그것조차 장기 전략이 아니라 즉흥성과 개인 정치 계산에 흔들렸다는 점이다.

 

특히 트럼프 2기는 그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제 그는 기존 정치 문법을 깨는 혁신가가 아니라, 충동과 관심 끌기에 중독된 정치 사업가처럼 보인다. 국제 정세는 장기 전략으로 접근해야 하는데도 트럼프는 갈등과 긴장 자체를 정치적 흥행 재료처럼 소비한다. 이란 문제와 중동 정세 대응에서도 일관된 외교 전략보다 강경 발언과 메시지 뒤집기가 반복됐다. 세계 질서를 관리해야 할 미국 대통령이 국제 불안을 증폭시키는 변수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더 위험한 건 이런 방식이 여전히 대중적 지지를 얻는다는 점이다. 경제 불안과 정치 불신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복잡한 민주주의보다 “강하게 밀어붙이는 사람”을 원한다. 그리고 그 틈에서 장사꾼형 정치인은 자신을 유능한 경영자처럼 포장한다.

 

그래서 지금 다시 이명박이 소환된다. 단순한 향수가 아니다. 트럼프를 보며 사람들은 과거 한국 사회가 열광했던 기업가 정치의 실체를 떠올리는 것이다. 당시에도 사람들은 CEO 리더십을 기대했지만, 결국 남은 것은 거래 중심 사고와 개발 만능주의, 그리고 공공성의 후퇴였다.

 

기업은 돈을 벌면 성공이다. 하지만 국가는 다르다. 사회는 효율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외교는 거래만으로 굴러가지 않고, 공동체는 손익 계산으로 버티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명박과 트럼프는 국가를 지나치게 기업처럼 다뤘다. 문제는 그들이 기업가라기보다 지나치게 장사꾼에 가까웠다는 데 있다.

 

결국 두 사람의 공통점은 하나다. 스스로를 유능한 경영자로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국가를 단기 성과와 흥정의 논리로 소비했다는 것. 그리고 지금 세계는 그 후유증을 치르는 중이다.